"선생님, 화가 날 때마다 자꾸 매운 떡볶이가 생각나는 것을 멈출 수 없어요. 결국 어제도 상사가 너무 열받게 하는 바람에 폭식해 버렸어요."
최근 내원한 환자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패턴 중 하나다. 기분이 울적해서, 화가 나서, 속이 상해서, 반대로 기분이 너무 좋아 자기도 모르게 폭식을 해버렸다는 게 요지다.
지방흡입 이후 관리를 잘 하다가도 이같은 식습관이 반복돼 다시 살이 찔까 두려워 내원하는 환자도 많다. 지방흡입을 받았더라도 허기나 음식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는 게 아닌 만큼 의료소비자가 이같은 상황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에게 음식을 먹는 행위는 반드시 '생존'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이미 무언가를 먹는 것은 사회적 행위로도, 자신의 마음을 달래는 수단으로도 여겨진다.
문제가 되는 것은 주로 후자다. 당장의 상황이나 감정에서 벗어나 안정을 택할 때 음식을 먹는 경우 대부분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으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울 때 음식을 먹으면 빠르게 안정되는 것은 '포만감' 탓이 크다. 뇌는 음식을 먹으며 위장이 채워지는 것을 '행복감'으로 인식한다. 더욱이 기름기 많고 바삭한 음식, 달콤한 디저트, 자극적인 요리는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 분비를 촉진해 울적한 기분을 빠르게 달래주는 '일등공신'이다. 지친 마음을 음식에 위로받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무엇보다 맛있는 음식은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이처럼 감정적인 상황에서 음식이 생각나는 것을 '감정적 허기'라고 한다. 일종의 가짜 배고픔이다. 불시에 극도의 배고픔이 몰려오고, 짜고 맵고 단 자극적인 음식이 생각나며, 배가 불러도 숟가락을 놓지핫 못하고, 식사 후에는 후회감과 무기력함이 느껴지는 게 특징이다.
감정적 허기가 시작되는 것은 대개 만성 스트레스, 억압된 상황 등 부정적인 감정이다. 적절한 스트레스는 교감신경이 활발해지며 식욕이 억제되지만, 만성적으로 이어지는 스트레스는 반대 상황을 부른다. 끊임없는 야근, 학업, 집안일과 독박육아 등을 겪으면 식욕증진 호르몬인 코르티졸 활성화된다. 이럴 경우 '나만의 시간이 없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며 결국 음식을 찾게 된다.
이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살이 찌는 것은 시간문제다. 얼굴이 퉁퉁 붓고, 복부 둘레가 커지며, 아랫배와 허벅지까지 통통해진다. 이뿐 아니라 자극적인 음식을 밤에 몰아 먹다보면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지는 것은 당연하다.
감정적 허기를 달래는 첫 번째 방법은 음식이 아닌 다른 분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운동도 좋고, 취미 활동도 좋다.
하지만 시간에 치이는 현대인에게 이조차 어려울 수 있다. 이럴 경우에는 무조건 음식을 참지 말고 우선 '먹고 싶은 음식'을 차례로 종이에 적어보자. 이 중 하나만 '보상식단'으로 정해 과감히 섭취하자. 갈망하는 음식을 무조건 참기만 하면 욕구가 더 커진다.
더욱이 먹고싶은 음식 리스트를 작성하고, 이를 추려내는 과정만으로도 음식을 과도하게 많이 사는 것을 줄일 수 있다. 다만 음식을 샀다면 탄산음료나 사이드 메뉴를 추가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두 번째는 공복 상태에서 자신의 '진짜' 한끼 식사량이 얼마나 되는지 체크하는 것이다. 무엇을 먹더라도 한 번에 최소 20번은 꼭꼭 씹어먹고, 음식을 얼마나 먹었는지, 식사를 방해하는 스마트폰이나 책 등은 치운 채 음식에만 집중한다. 이럴 경우 대부분 평소보다 적은 양을 먹었음에도 포만감이 크게 느껴진다. 이때 먹은 만큼의 양이 실질적인 '1인분'이다. 이 정도만 지켜 먹어도 체중을 관리하는 게 수월해진다. 식사일기를 작성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특히 지방흡입을 받은 뒤 다시 살이 찔까봐 걱정하는 사람은 '3kg' 증가를 기준으로 두고 관리하는 게 유리하다. 1~2㎏ 정도는 하루에도 왔다갔다 하지만 3kg를 넘어서면 다시 마음을 잡기 힘들어진다. 이미 감정적 폭식을 반복하며 3kg 넘게 몸무게가 늘었다면 주치의와 상담하며 관리계획을 다시 세우면 된다. 다이어트의 종착역은 결국 '지속성'이다. 오늘 폭식했더라도 내일 식단을 타이트하게 조이고 관리하는 식으로 자신에게 조금은 다정하게 대해줄 필요가 있다.